오늘은 영화 평론 가라는 직업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한 스타 평론가”이…돈이 “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평론가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솔직히 저는 매체를 통해서 스타가 된 사람들을 무조건 맹신하지 않는 편입니다. 나중에 다른 포스팅을 통해서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밝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 진 평론가의 경우는 분명히 다릅니다. 대단한 사람이라 매번 느낍니다.그렇다고”이 사람, 너무 좋아.”라는 감정까지 있지는 않지만. 과거에는 그저 인지도 높은 사람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계에 이런 평론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그런 제가 이동진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2017년입니다. 그 당시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었던 tvN ‘어쩌다 어른’에 그가 출연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책과 영화를 통한 세상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강연했습니다.이때 진행자 김상중의 질문에 답하는 그의 모습에서 굳은 신념과 경험에 따른 확고한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황승언을 비롯해 다양한 연예인 패널에 대한 자세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를 보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임을 직감했습니다.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레퍼런스로 준비한 영화에 대한 그의 견해였습니다. 단순히 텍스트로만 접하는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문이 아니라 자신의 입에서 차분히 장면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동 진 평론가의 말과 표정에는 자신이 가득했습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그 정도 엷은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지적 우월감이 언동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보기 드문 비범하면서도 겸손한 캐릭터라고 느꼈습니다. 그 뒤 그의 관련 활동을 직접 찾아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 같아요.그래서 오늘은 배우 정보 소개가 아니라 영화 평론가 이·돈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사 시간을 가지면 어떻겠습니까, 포스팅에서 준비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발자국을 함께 더듬어 봅시다. 렛츠 고!1. 프로필”영화 평론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이·동 진 평론가는 1968년 고향인 강원 정선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 56살입니다. 1993년부터 2007년 1월까지 조선 일보 문화부 영화 섹션 담당 기자로 주로 활동했었습니다. 그 뒤 라디오” 푸른 밤 그리고 송·시경아입니다”방송 코너”영화는 수다쟁이다”등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독보적인 스타 영화 평론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그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출생:1968년 1월 7일-고향:강원 정선군-학력:서울 대학교 종교학 학사-직업:영화 평론가 작가, 방송인-경력:조선 일보 문화부 기자(93년~07년)-가족:3남자 1녀 중 막내-결혼:배우자, 슬하 1남 1여자-병역:육군 병장 만기 전역(카토우사)2. 여유가 없었던 환경어린 시절 이·동 진 가정 환경은 경제적으로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하위 30%에 해당하는 집에서 태어난 그는 그 때, 책을 읽고 싶어도 집에 읽을 수 있는 책이 거의 없고, 독서를 하느라 책을 빌려서 읽기도 했습니다.이에 자존심이 크게 손상됐다 이…돈이는 10대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했다 그는 한영 고교 2학년 때 겨울 방학 때 1학년 밑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를 하여 수입을 올렸습니다.그렇게 번 돈에서는 읽고 싶었던 책을 직접 구입해서 샀습니다. 종교학에 관심이 높던 이는 학문적 탐구를 더 하려고 서울대 종교학으로 진학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 1학년의 정토종의 한 파 교학 명문으로 유명한 시카고 대학에 유학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3. 과외 아르바이트유학 갈 돈을 벌기 위해서는 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어요. 이과생을 대상으로 가르치면 더 큰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동진은 학원에 등록하고 지금까지 배운 적이 없는 이과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결국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이과 학생들에게 과외를 할 수 있었고, 학생 신분으로 부모님께 생활비를 더해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4. 유학대신 취업준비이·돈이 입대를 당시 6달만 복무하는 석사 장교로 가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석사 학위의 교제가 갑자기 폐지되었습니다. 결국 카ー토우ー사의 지원서를 내며 친구에 대해서 본인도 카ー토우ー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유학 가려던 계획이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군 제대 이후 한동안 헤맸습니다. 복학하고 4학년 1학기를 보낸 시기, 이왕이면 앞 글을 쓰는 직업을 원하는 생각한 그는 기자가 되는 것을 진로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내의 언론 고시 공부 모임에 들어오려고 했어요.그러나 이미 기자를 꿈꾸던 학생들은 모두 3학년 2학기에 공부 모임을 결성하고 정원에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공부 모임에 들어가지 않고 직접 관련 공부를 시작하고 무조건 2년 이내에 합격한다는 목표도 세웠습니다.기자 되려고 격렬한 독학을 하던 끝에 이·돈이는 1993년 생애 처음 받은 언론사의 시험인 조선 일보 입사 시험에서 단번에 합격했습니다. 그는 조선 일보 문화부 영화 섹션 담당 기자라는 명함이 생겼습니다. 5. 스타 기자의 탄생실제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는 영화만 담당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회사 측에서 그의 이력 중 영화 관련 책을 쓴 사실에 주목하고 영화 쪽에 자리를 준 것입니다. 아무튼 그의 영화 전문 기자로서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솜씨의 나무는 나뭇잎에서 다르다고 하셨어요? 당시 조선 일보는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자르려는 사람들조차 그가 발행하는 영화 섹션을 보려고 조선 일보 구독을 유지했습니다. 그만큼 영화 기자 시절, 특출한 스타 기질을 선 보였습니다.인기가 급상승하자 유명 게임 회사에서 광고 모델 제의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돈이는 시드니 올림픽 사격 은메달 리스트인 강·조현, 쟈우림보ー칼의 김·윤아,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씨와는 당대를 대표하는 화제의 인물과 함께 리니지 광고 모델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6. 퇴근 결심그 뒤 미국에서 연수를 하게 된 그는 진지하게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서 자기 성찰을 했습니다. 석사 학위를 받고 학문적 성취를 더 이루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가 등을 고민하던 그는 모든 잡념을 모두 버리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전례 없는 영화를 닥치는 대로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그렇게 이·돈이는 2004년 8월부터 1년 동안 무려 1017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때 다양한 예술 작품과 보다 넓은 외부 세계를 통해서 시야가 넓어지고 경험을 한 그는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봤습니다. 10년 이상 한 직장에서 해온 기자 생활과 시스템에 갇혀조직 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가에 대해서. 마침내 그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모든 것이 부서져도 좋다는 일념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어요. 2006년 평소처럼 출근하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3층에 오르는 도중”회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라는 거부감을 강하게 느끼고 곧 1층 버튼을 누르고 다시 1층에 내렸습니다.세차게 몰아쳐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있던 그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런 기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곧 사표를 내고 13년간 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7. 그래도 책과 영화퇴근 후 프리랜서가 된 이·돈이는 네이버와 손 잡고 한명 언론”이·동 닷컴”(*현재의 이·동 블로그)을 운영했습니다. 라디오 방송 출연도 적극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6년 라디오” 푸른 밤, 그리고 송·시경아입니다”에 출연하고 그를 몰랐다 사람들에서 또한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MBC” 꿈꾸는 다락방”,” 푸른 밤”팟 캐스트”이…돈이 붉은 서점”등 다양한 통로를 타고 대중과 지적 소통을 나누었습니다. 퇴근 후, 블로거인 방송인이 된 이·돈이 항상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곁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활동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할 수가 주로 되었습니다.현재까지도 “언제나 영화처럼 “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종 영화 관련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서도 꾸준히 자신이 본 작품에 대해서 리뷰를 남기고 있습니다. 직접 참여하는 GV의 뉴스도 함께 전합니다. 8. 독서광영화뿐만 아니라 책이나 음악 등 문화 자체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인물입니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이동진의 작업실을 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앨범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책을 2만권 이상 직접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독서를 즐기고 있습니다. 음악앨범 CD도 1만 장 이상 있어 꼭 영화평론이 아니더라도 문화다방면 리뷰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9. 영화 평론의 특징영화”파라사이토 반 지하의 가족”때처럼 난해한 단어를 사용하는 일행 평가를 줬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지만 비전문적인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 가능한 표현으로 정리된 짧은 글에서 핵심을 찌르는 평가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불필요한 수사를 제외하고 장점과 단점과 특징을 가장 명확한 단어로 표현하는 데 뛰어납니다.이·동 진 평론가는 특정 작품을 평가할 때 자신의 주관적인 역사적,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소재와 주제 때문에 평가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없는 편입니다. 오로지 영화 자체의 작품적 가치와 감독의 연출 방법, 배우의 연기에 대한 평가에 리뷰를 작성하여 평점을 매기다 스타일이에요. 10. 빨간 안경현재 이동진 평론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빨간 안경’은 직장 퇴사 후 맞춘 것입니다. 처음 안경점에서 착용했을 때 제 얼굴에 잘 어울린다고 느꼈는데 색이 너무 두드러져서 고민했대요. 결국은 처음에 좋았던 느낌 그대로 그 안경을 선택했어요. 이후 일종의 이동진을 상징하는 사물이 되어 현재까지 계속 빨간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11. 결혼 및 가족 관계부인과 1남 1녀가 있습니다. 이동진의 결혼 여부나 자녀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는 그만큼 그가 방송을 비롯한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족 관련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족을 아끼는 이동진 평론가의 배려입니다. 종교나 가족에 대해서는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소신입니다. 12. 점쟁이의 예언이동진 평론가 대학생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서울대 재학시절 선배에 대해서 우연한 기회에 점을 보게 되었는데 점쟁이가 오늘날 그의 상태를 정확히 맞춘 것입니다. 당신은 넥타이를 매지 않을 것 같다. 직업이 여러 가지 있다”고 결과를 말했다.당시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훗날 그때 얘기가 떠올라서 깜짝 놀랐대요.이동진 평론가 대학생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서울대 재학시절 선배에 대해서 우연한 기회에 점을 보게 되었는데 점쟁이가 오늘날 그의 상태를 정확히 맞춘 것입니다. 당신은 넥타이를 매지 않을 것 같다. 직업이 여러 가지 있다”고 결과를 말했다.당시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훗날 그때 얘기가 떠올라서 깜짝 놀랐대요.이·동 진 영화 평론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최근 활동을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과거의 그의 행적을 쫓는 것이 더 읽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그는 현재도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영화 정보와 작품 후기를 꾸준히 발행하고 있습니다.아까 블로그에 와보니 퇴근 후 최초의 글을 남긴 시점이 2007년 3월 19일이지요. 이 글을 시작으로 블로그에 자신의 영화 이야기를 집어 넣은 포스팅 수만도 3,861건입니다. 16년간 계속 무언가를 보고 읽고 또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네요.평론가 이·동 진 발자국을 학생 시절부터 추적해서 어떤 영감을 받았어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이 잘 느껴지네요. 그럼 또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그의 블로그 이름처럼 언제나 영화처럼 멋지고 훌륭한 하루 보내세요!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최근 활동을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과거 그의 행적을 쫓는 게 더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구성해봤습니다. 그는 현재도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영화 정보와 작품 리뷰를 꾸준히 발행하고 있습니다.아까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퇴사 후 첫 글을 남긴 시점이 2007년 3월 19일이네요. 이 글을 시작으로 블로그에 자신의 영화 이야기를 담은 포스팅 수만 3,861건입니다. 16년 내내 무언가를 보고 읽고 또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네요.평론가 이동진의 발자취를 학창시절부터 따라다니면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는게 잘 느껴지네요. 그럼 또 새로운 인물 얘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그의 블로그 이름처럼 항상 영화처럼 멋지고 멋진 하루 보내세요!